Piano Concerto No.24 C minor K.491 | |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다단조, K.491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No.24 in C minor, K.491 전악장 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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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o for Piano No.24 in C minor, K. 491
Common Name : Concerto For Piano Catalog No. : K 491 Composer : 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Conductor : Andre Cluytens Performer : Clara Haskil (Piano) Genre : Classical Period / Concerto Date Written : 1786 Ensemble : ORTF National Orchestra Period : Classical Country : Vienna, Austria Recording : Live Venue : Paris, France Recording Date : 1955 Label : Urania Release Date : Mar 28, 2006 Mono/Stereo : Mo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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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다단조, K.491
비극적 말년 고뇌하는 모짜르트의 소리 - 모짜르트는 27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이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이다. 이 은 그의 <24번 c단조협주곡>과 함께 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 2개뿐인 단조 작품으로 모차르트 작품의 일반적인 성격인 화려한 기교와 밝은 색채에서 벗어나 어둡고 우울한 음영이 짙게 드리운 작품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 작품에서 모짜르트의 품성으로 굳어져버린 천진성, 치기, 물정에 어두운 바보스러움 등과는 거리가 먼 원숙하고 사려깊은 한 예술가의 고뇌를 읽어낼 수 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1악장과 3악장에 멋진 카덴차를 붙여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이 곡이 씌어진 것은 모차르트가 29세 때인 1785년으로 당시 빈에서는 주로 장조로 된 밝고 발랄한 피아노 협주곡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당시의 그 같은 대중적 요구에 반하는 것으로, 모짜르트는 이 작품에서 예술가로서 진정한 고뇌와 정열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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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피아노 협주곡 24번은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얼마 안 되는 단조곡으로 다른 단조곡들, 가령 교향곡 40번, 피아노 협주곡 20번 등과 마찬가지로 의심할 나위 없는 걸작이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협주곡 중에서 가장 큰 편성을 갖추고 있다.
유명한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모짜르트가 단조곡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작곡한 후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고, 빈 사람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으며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느꼈다"고 추측하였다.
그래서 22번이나 23번과 같은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작품들을 작곡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24번은 20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창조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작곡한다. 엘리아스는 이 길항관계가 모짜르트 음악의 키워드라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24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하였으며(조성 역시 2악장만 E 장조와 E플랫 장조로 조금 다를 뿐 1, 3악장은 c 단조로 두 곡 모두 같음), 이 곡은 지극히 '베토벤적'이며 '교향악적'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통상 '경박한 천재 모짜르트'와 '심오한 불굴의 인간 베토벤'이라는 식의 대립항을 설정하기 쉽지만, 이 곡은 모짜르트의 심오한 음악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이 협주곡은 모짜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창작하던 1786년 예약 음악회(당시의 음악가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귀족들을 모아 놓고 신곡을 발표하던 음악회)를 위해 작곡된 곡인데 그가 내용이 전혀 다른 이 두곡을 거의 동시에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 곡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제 23번 피아노 협주곡>도 작곡되었다는 점을 보면 모짜르트가 얼마나 비범한 천재인지를 알 수 있다.
한 해 전에 만든 <피아노 협주곡 제 20번>과 함께 단 두 곡뿐인 단조 협주곡 중 하나인 이 곡은 20번과 마찬가지로 무겁고 깊숙하면서도 로맨틱한 내용인데다가, 악기의 뛰어난 사용법과 관현악의 충실함에 있어서는 20번 이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들을 때는 우선 ≪제 20번≫과 ≪제 24번≫부터 먼저 듣기를 권한다. |
앙드레 클뤼탕스(Andr Cluytens 1905~1967)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태어났다. 1914년부터 1922년까지 앤트워프의 왕립음악학교에서 배우고, 1921년 피아노로, 그 이듬해에는 화성과 대위법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1922년부터 1927년까지 앤트워프의 왕립 오페라 극장의 합창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그 이후는 왕립극장의 제1지휘자가 되었다.
1927년 프랑스 왕립극장에서 비제의 오페라 [진주잡이]를 통해 지휘자로서 데뷔하였으며, 이어서 1932년 툴루즈의 카피톨 극장의 지휘자 겸 음악 감독, 1935년에는 리옹의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1938년에는 보르도 대극장의 지휘자가 되고, 한편 비시의 그랑 카시노에서는 콘서트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따라서 클뤼탕스가 연주회를 지휘한 것은 33세부터였다. 1942년 리옹의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 겸 음악 감독, 1943년에는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과 국립방송 관현악단과의 계약이 성립하였다. 이로부터 클뤼탕스와 프랑스와의 밀접한 관계가 생기게 된 것이다.
1944년 파리 국립 오페라의 지휘자, 1947년에는 오페라 코미크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고 유럽에서 처음 연주 여행을 하였다. 1949년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부회장과 지휘자로 임명되고, 프랑스 음악에의 공헌의 공적을 인정받아 레종 도뇌르 기사에 서위되었다. 동시에 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의 주임 지휘자가 되어 유럽, 소련, 미국에 연주 여행을 하였다. 연주회와 극장에서의 그의 공적을 빌란트 바그너가 인정하여, 1955년에는 바이로이트에 초빙되어 그의 새로운 연출에 의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상연 시켰다. 1956년에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1958년에는 [로엔그린]을 지휘함으로써 클뤼탕스는 처음으로 프랑스파를 바이로이트에 심는 지휘자가 되었다. 또한 빈에서도 환영을 받아 자주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1967년 6월 3일 암으로 파리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클뤼탕스의 바그너는 연출가 빌란트 바그너가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의 [마이스터징어]는 템포, 리듬, 강약에 대하여 전통적이 아니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감각은 독일적이 아니고 프랑스적이며, 그것도 섬세하고 색채가 풍부한 남프랑스적이었다. 그 때문에 비제, 라벨, 루셀 등의 근대 프랑스의 감각적인 작품에 있어서는 그의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났다. 그의 음악에 대한 청결하고 고귀한 태도는 베토벤의 연주까지도 음악적으로 풍부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만큼 연주에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노정시키지 않았던 지휘도 드물다. 그는 따스한 마음씨를 가졌고 항상 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지휘자이기도 하였다. 레코드는 상당히 많이 발매되고 있어서 고전파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 (세라핌)을 들 수 있으며, 프랑스 작품으로는 포레의 [레퀴엠], 라벨의 [관현악 전집], 베를리오즈의 [관현악 전집]과 [서곡집],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 제2모음곡)], 프랑크의 [교향시집](이상 에인절)이 뛰어나다. |
클라라 하스킬 ( Clara Haskil,1895-1960 )
- 시대의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피아노의 성녀 | |
피아노의 성녀. 클라라 하스킬
클래식 음악에 대해 접근하면 할수록 새삼 느끼게 되는 일들 중 하나는 이 분야에 유독 천재도 많고,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장애로 인해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이 말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냄새가 묻어나는가?)시켰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그랬고(청력상실), 자클린느 뒤프레(다중경화증), 오토 클렘페러(워낙 사고 종류가 많아서 한 마디로 어떤 치명적 사고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휘자) 역시 그랬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클라라 하스킬의 예술적 생애 역시 그러하다. 솔직히 하스킬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린 소녀의 수줍음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연주에서는 프로 연주자의 강박같은 것이 없다. 대신 그녀의 연주에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딜레탕티즘이 느껴지곤 한다.(순전히 개인적인 사견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천의무봉한 연주라는 격찬을 받는 그녀의 연주를 아마추어 애호가의 연주와 빗대는 것은 아니나 하스킬의 연주는 듣는다기보다는 즐기게 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아무리 격렬한 음악도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그녀의 신산한 삶에 비하면 그녀의 음악은 막 바닷가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해물의 비릿한 냄새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다.
신비평(New criticism)은 문학을 실증주의적이거나 비평가 개인의 감상, 역사,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지만, 작품과 작가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게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도 그녀의 연주만으로 하스킬의 일생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그녀의 인생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사람들은 그녀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그녀의 연주가 단순히 천의무봉한 테크니션의 그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승화된 성녀의 연주로 들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몽환적 아름다움을 겸비한 천재 소녀

음, 이 때는 언제지? |
하스킬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에피소드는 그녀의 천재성에 관한 것들이다. 가령 그녀의 나이 여섯 살 때 하스킬은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단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따라 쳤다고 한다. 물론 악보를 전혀 알지 못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뿐이 아니라 그녀는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서 연주했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그녀의 천재성에 대해 뭐라고 더이상 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 자신도 천재 중 하나라고 분류되곤 하는 찰리 채플린은 하스킬을 만나고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하스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스킬이 만약 20세기 초엽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그녀의 음반은 플래티넘은 우습게 넘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하지 않는다.

피아노 앞에 앉은 클라라 하스킬 - 발병하기 전의 모습이다. |
하스킬은 18세(1913년)에 발병하여 숨지던 그날(1960년)까지 일생동안 병마와 전쟁,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병은‘세포경화증’(Sclerosis)이라는,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녀는 이후 4년간 몸에 깁스를 댄 채 살아야 했으며 당연히 연주도 할 수 없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시기에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댄 채 누워있어야 했다. 불행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다. 마치 저주에 걸린 공주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꼽추가 되어 버렸다. 20대의 나이에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워 일어난 그녀는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예전의 인기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복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녀는 유태인이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그녀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극도의 공포와 피곤으로 인한 뇌졸증을 일으켰다. 실명의 위기에 부닥쳤으며 각종 신경계에도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유태계 의사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달려왔고, 어려운 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스킬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돌아섰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마르세유 근교에 숨어 지내야 했다. 당시 그녀에게는 바이올린 한 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

그녀와 함께했던 연주자들은 하스킬의 손가락이 엄청 나게 길고 넓게 벌어졌다는 말을 전한다. 그녀가 손을 펼치면 부채가 펴진 모양이 되었으며,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이 손목에 직접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 한다. |
하스킬의 연주와 죽음
하스킬은 평생을 고독과 싸워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고집세고 편협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당대의 연주자들이 그녀에 대해서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본 데에는 그녀의 한없는 겸손함과 인격에서 비롯된 바가 크기 때문이다. 하스킬은 일찍부터 일류 음악가들과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코드 녹음은 1947년 그의 나이 52세에 이르러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하스킬의 음악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였고, 그녀의 연주는 명징했으며 아름다웠다. 어떤 꾸밈이나 과장없이 다만 마음을 다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오랫동안 병마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클 라라 하스킬의 친구는 고양이었다. |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모’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처음으로 잘츠부르크를 방문한 때의 일이었다. 떠나기 전 러시아의 음악인들은 니콜라예바에게 “서방에 가거든 카라얀이란 지휘자의 콘서트에 꼭 가보도록 해. 그는 새로운 토스카니니로 알려져 있어”라고 조언했다. 때마침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의 모짜르트 연주회가 있어 이에 참석했다. 당시의 협연자가 클라라 하스킬이었지만 니콜라예바로선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피아노의 거장이 토로한 하스킬에 대한 감동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녀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최고의 모차르트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되어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택에 그들 모두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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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클라라 하스킬의 무덤
말년에 이르러 하스킬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
클라라 하스킬
1895년 1월7일: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출생, 부모는 스페인계 유태인 1899년:아버지 사망 1905년:뵈젠도르프 협회에서 솔로 리사이틀로 데뷔 1906년:파리 음악원 입학 1910년:파리 음악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1913년:세포경화증으로 입원, 이후 8년간의 연주생활 공백 1918년:어머니 사망 1921년:연주 생활 재개 1924년:북미 연주회 1926년:영국 데뷔 연주회 1927년:파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1947년:첫 레코딩. 런던 필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1949년:스위스 국적 취득 1956~58년:아르투르 그뤼미오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과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 1960년 11월:마르케비치와 모짜르트 협주곡 20번, 24번 녹음 1960년 12월 7일:벨기에 브뤼셀 병원에서 사망 |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전설 속의 거장 - 20세기를 매혹시킨 클래식의 천재들』/ 조희창 지음 / 황금가지 / 1998 - 오랫동안 <객석>의 기자로 일했던 조희창 씨가 자신이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매혹적이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거장들의 이야기가 대중적인 필치로 잘 그려져 있다. 강력 추천한다.(바람구두 실력 뽀록나게 하는 책이다.)
『이 한장의 명반』/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1999년 -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 음반에 관한한 고전 중 하나가 된 책이다. 클래식 음악 초심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길잡이다. 애호가들에게도 지휘자와 지휘자의 차이, 가수와 가수의 차이까지 식별하는 심미안을 키우는 데 유익한 길동무다. 음악사에 빛나는 명곡들을 망라하면서, 한편 한편마다 곡해설은 물론 작곡가의 생애, 시대적 배경, 작곡과정에 얽킨 사연, 녹음과정, 다른 음반과의 차이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 클라라 하스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콩쿠르 사이트이다.(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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