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김민기1 가을 편지 (1993 서울음반) 金敏基 / Kim, Min-Ki (1951년 03월 31일 - ) 1. 가을 편지 - Track 전곡 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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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Title: 김민기 1 아티스트: 김민기 Credits ■ 녹음·편집: 이훈석, 녹음진행: 김윤식·윤정오, 편집보조: 김병극·임창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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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詩: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곡: 김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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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편지 |
(작사:고은 작곡:김민기 편곡:이병우) |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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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 金敏基 / Kim, Min-Ki (1951년 03월 31일- ) 출생: 1951년 03월 31일 / 대한민국 학력 가족: 6남 4녀 중 막내 프로필 '김민기' 의 음악 활동: 도비두 (1970) with 김영세. |
Introduction
김민기(1951년 3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이며 뮤지컬 기획자이다. 그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는 힘들고 지친 빈민층을 사랑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곡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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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한대수가 행복의 나라로를 노래하면서 한국의 통기타 쟝르가 시작됐다면, 71년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한국포크뮤직의 전성기를 확실하게 열어젖힌 진정 고마운 노래다. 한대수가 그의 노래를 통해 대화형식의 말투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면, 김민기는 독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 이슬 처럼...
긴 밤은 기다림의 수동적인 밤이요, 웅크린 밤이다. 결국 답답함의 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밤은 혼자 지새운 밤이다. 고통과 불면의 밤인 것이다. 밤이 길다는 것은 혼자의 밤이기 때문이고, 쾌락 대신 정신과 이성과 우리가 간직하고 이룩하고 도착해야할 이상을 잘 간직하고, 꿈꾸고, 그곳에 도착하고 ,이루기 위하여 초로안 눈망울로 깨어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람은 있었다.
풀잎 마다 맺힌 아침이슬을 시인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슬은 말 없이 밤의 고독을 견대낸 자의 몸마름을 축여주고, 마음을 적셔준다. 작은 이슬방울이 마치 백만대군 처럼 순수한 정신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풀잎이 잠들지 못하고 밤을 지새워 아침이슬을 매달았듯이, 고독한 시인 역시 그렇게 풀잎과 하나였음을. 이렇게 해서 일단 풀잎과 아침이슬은 하나가 되었고, 그 풀잎과 아침이슬과 시인이 또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왜 설움인가? 왠 설움인가? 무엇 때문에 소외되었고, 비참한가? 가난 때문인가? 정치적인 소외인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의 신세가 스스로 딱하기 때문인가? 인간들의 경거망동과 얍삽함이 난무하기 때문인가? 마음 붙일 곳이 없기 때문인가? 시인과 풀잎과 아침이슬의 하나됨의 순간에 설움이 새삼 솟구치듯 시인의 마음에 일제히 합류한다. 그 서움 많기도 하다. 풀잎 위에 아침이슬 처럼 자욱하다. 하지만 아침이다. 어둠을 거뜬히 물리친 아침이다. 장엄함이고 기적이고 매일매일의 신비이다. 그래서 설움에 가득한 시인은, 툭하면 눈물의 바다로 잠수하는 시인은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미소를 배운다. 그것은 아침의 눈부심 때문이고, 스스로의 설움이 시대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고독은 역시 시대를 연구하여 시대를 사랑하기 위해서 인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본능이다. 따라서 본능이 죽어있는 시인은 더 이상 시인이 아니다. 그리고 시인의 정신적 본능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더 이상 시인은 아니다, 가짜시인이고,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본능적으로 시인은 아침동산에 오른다. 그리고 왜 작은 미소를 배우게 되는지 좀 더 확연하게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 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 일지라...
아침동산에 오르니 이제는 아침이슬을 비추어 주던 태양이 묘지 위에 불끈 떠올라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이제 막 떠 오르고 있는 중이고, 그 태양은 이제 사정 없이 뜨겁게 땅위의 모든 것을 달굴 것이다.
시인의 하루도 그렇게 뜨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진리의 폭우인 것이다. 시인은 그 비를 피할 생각이 아예 없다. 그는 곧 다가올 그 찌는듯한 더위를 온몸과 마음으로 엄숙하게 긴장한 채 맞이하고 만날 생각이다.
그리고 그 찌는 더위를 운명 처럼 자신의 시련으로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설령 찐 감자나 찐 고구마 처럼 익어버릴지라도 시인의 정신은 가난한 마음들에게 훌륭하고 맛있는 양식으로 사용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 또한 도사리고 있다. 시련이 지나쳐 그는 아예 태양열로 화상을 입거나 타버릴지도 모른다,
정신의 순교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렇게 선언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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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올커니, 이제 시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시인의 정신적 본능은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저 거친 광야인 것이다. 이제 시인은 도시의 타협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야합과 음모와 온갖 악행을 벗어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그래서 삶이 진중해지고, 인생이 빛이 되고, 그래서 누구나 작은미소 처럼, 밤을 지새운 풀잎 처럼, 깨끗한 아침이슬 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하여 저 거친 광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도시는 평화와 사랑이 중심가치로 가장 드높게 대접받고 간직되는 도시다. 김민기는 이 노래를, 아니 이 평화선언문 같은 위대한 노래를 우이동의 묘지 앞에서 만들고, 양희은은 이 노래를 70년대 초 청년문화의 성지인 명동의 오비스 캐빈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었다. 꿈과 환상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맨 처음 밤의 공포와 혼자만의 고독과 그 긴 기다림의 긴밤에 압도 당하던 시인은 탈출구를 찾기 위하여, 밤새 깨어있다가, 날이 밝아오면서 풀잎과 아침이슬을 발견한다. 시인은 그곳에 잠시 자신의 정신을 의탁한다. 그는 어둠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아침이슬은 일종의 세례였던 셈이다. 그리고 맑아진 마음과 발길은 본능적으로 작은동산으로 올라가(마치 예수를 닮고 싶은 아이 처럼) 햇살 속에서 작은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반드시 어둠을 날리고야 만다, 태양은 매일아침 개혁을 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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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시인은 예술적 득도를 한다. 이제 모든 방황은 끝났고, 새로운 방향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찌는 더위를 머리 위, 하나가득 승리의 월계관 처럼 이고, 거친광야로 떠나며 그는 문득 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서러움을 모두 버린다고. 이제 더 이상의 슬픔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주의의 위대성이다.
이제 그는 영원한 태양과 합류하는 것이고, 그 빛의 조직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작은미소이고, 물질주의에 압사당한 도시 속에서도 죽지 않는 불사조의 정신인 것이다. 그의 꿈을 누가 가둘 수 있고, 그의 노래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침이슬과 작은미소가 태양과 하나가 되는 아름답고 위대한 변신의 노래, 끊임 없는 예술적 개혁과 변주의 깊이와 미학이 바로 아침이슬인 것이다. 그걸 김민기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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